강의 노트 · Field Note | 지홍선 (경영학박사 ·『커뮤니케이션 코드』 저자)
작년 겨울, 어느 제조기업 전 사원 교육을 마치고 설문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250명 규모, 3년째 이어온 1박 2일 과정이었습니다.
만족도는 좋았습니다. 5점 만점에 4.5. 내년에도 참석하겠다는 응답이 90%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자유 의견 칸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올해는 발표 안 시킬 거라고 하셨는데, 작년보다는 조금 덜했지만 여전히 많이 시키셔서 좀 그랬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년도 설문에도 같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줄였습니다. 조별 발표를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였고, 개인 발표 시간을 절반으로 잘랐습니다. 스스로는 꽤 노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많았습니다.
숫자를 다시 셌습니다. 3년치 자유 의견에서 같은 계열의 문장을 골라냈습니다.
“발표 좀 그만시켜주세요”
“시키는 거 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개별 발표는 다소 지양했으면 합니다”
“경청하게 해주세요”
“참여활동이 너무 많아요”
“내향적인 사람에게 작은 배려 부탁드립니다”
한 해에만 열 건이 넘었습니다. 다른 어떤 항목보다 많았습니다. 시설도, 식사도, 숙박도 이만큼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단일 이슈로 압도적 1위였습니다.
문제는 내가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설문의 다른 칸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습니다.
“늘 멋진 에너지를 보여주시고”
“밝은 모습으로 에너지 넘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신 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년간 저를 먹여 살린 문장들입니다. 저는 판을 끌고 가는 강사입니다. 사람을 앉혀두지 않고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게 제 방식이었고, 그래서 다시 불렸습니다.
그런데 에너지로 판을 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사람을 시킵니다.
일어나게 하고, 짝을 지어주고, 앞에 세우고, 말하게 합니다. 절반에게 그것은 즐거움입니다. 나머지 절반에게 그것은 1박 2일 내내 이어지는 압박입니다.
칭찬과 불만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것의 앞면과 뒷면이었습니다.
‘참여’라는 말을 다시 봤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참여도는 곧 성패의 지표입니다. 저 역시 오래도록 참여를 이렇게 정의해 왔습니다. 손을 든다, 앞에 나온다, 소리 내어 말한다, 몸을 움직인다. 전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입니다. 관찰이 쉽고, 사진이 잘 나오고, 결과보고서에 담기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조용한 사람을 참여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해 왔습니다.
틀렸습니다.
조용히 앉아 자기 업무의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 뿐, 머릿속에서는 누구보다 깊이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마이크를 들이미는 순간, 저는 학습을 돕는 게 아니라 학습을 중단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픈 사실 하나
박사 과정에서 조직 커뮤니케이션을 파고들며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조직의 진짜 문제는 대체로 말 잘하는 사람 쪽에 쌓이지 않습니다.
발표에 능한 사람은 이미 회의에서, 보고에서, 복도에서 자기 의견을 전달합니다. 그 사람의 문제의식은 이미 조직에 도착해 있습니다.
정작 도착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 사람의 문제의식입니다. 20년째 같은 불편을 참고 있고, 왜 이렇게 하는지 의문을 품고 있지만, 한 번도 그것을 꺼내 본 적 없는 사람.
교육은 그 목소리를 꺼내라고 존재합니다. 그런데 꺼내는 방법을 발표로만 정해 두면, 정작 꺼내야 할 사람은 영원히 침묵합니다.
말하기를 강요하는 참여는, 가장 필요한 사람을 배제합니다.
그래서 바꾸기로 했습니다
올해 설계에서 저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참여의 정의를 넓힌다.
발표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발표를 유일한 통로에서 여러 통로 중 하나로 내리는 것입니다. 앞에 나가 발표하는 대신 자기 자리에서 만들고, 소리 내어 말하는 대신 종이에 적고, 조별 대표가 정리하는 대신 각자 결과물을 벽에 붙입니다.
하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기 싫은 사람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설계가 없다면, 그것은 설계가 부족한 것이지 사람이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20년 차의 고백
강사는 자기 강의를 볼 수 없습니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기 뒷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제가 저를 볼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는 설문지였습니다. 그것도 점수가 아니라, 맨 마지막 칸의 손글씨였습니다.
만족도 4.5는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발표 좀 그만시켜주세요”는 저를 바꿨습니다.
점수는 강사를 지키고, 문장은 강사를 키웁니다.
그래서 저는 설문지의 마지막 칸을 가장 먼저 읽습니다. 그리고 거기 적힌 말이 불편할수록, 오래 들여다봅니다.
교육은 강사가 잘한 만큼이 아니라, 가장 조용한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돌아갔는지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